"젠트리피케이션같은 부정적 이슈 말고 다른 걸 취재하면 안되나요?"
"도시재생(regeneration)이란 '젠트리피케이션'의 사탕발린(sugar-coated) 표현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론화한 영국의 지리학자 닐 스미스의 말이다. 도시재생에는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따라온다는 뜻이다. 실제 그렇다. 낙후됐던 구도심 지역이나 다세대주택이 밀집했던 동네가 어느 순간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고,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 못한 원주민들과 기존 임차인들은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 없이 도시를 개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해야할 일은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도시개발 동전의 뒷면'으로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부작용들을 최소화하려 노력하면 된다.
정부는 그동안 상가 임차인의 권리 강화를 위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는 등 노력을 해왔다. 지자체들도 임대인과 임차인 간 '상생협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상생협약은 법적 구속력 없이 건물주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고, 강화된 상가임대차보호법 역시 소유권 중심의 현행 법률체계 하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한 임차인은 상가임대료 인상을 연 5%로 제한하는 임대차보호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을'인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에 맞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이 임차인은 월세를 5% 이상 올리자는 건물주에 "법적 상한선을 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좋다. 그러면 법대로 하자. 앞으로 매년 무조건 5%씩 월세를 올릴 거고, 나중에 권리금 받아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토로했다.
본 기획취재팀의 취재 기간 내내 공공기관 및 지자체의 인식도 크게 실망스러웠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정적 이슈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사화가 안 되는 게 좋다.", "젠트리피케이션 말고 창업위험도 쪽으로 취재를 하시면 어떻냐. 그 데이터는 내줄 수 있다." 등의 말이 수시로 들렸다. 심지어 "서울시나 청와대가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화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었다.
취재의 근간으로 삼은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 데이터 확보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서울신용보증재단과 함께 2015~2018년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를 산출·분석한 자료인데,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처음엔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정보공개청구와 국회의원실을 통한 끈질긴 자료 요청 끝에 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범위가 넓은 행정동별 지표만이고, 세부 블록단위 자료는 받지 못했다. 외부 업체에서 돈을 주고 사온 데이터라 반출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산하 공직유관단체가 공익적 목적으로 모은 데이터인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국토연구원은 해당 연구의 목적을 "정량화된 수치로 진단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지표를 만들어, 발생 단계에 따라 적절한 정책적 대응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연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을 진단 및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해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고도 썼다.
하지만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올해는 이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를 만들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기관은 "국토연구원의 제안으로 한 번 해본 것이지 우리가 매년 해왔던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공공기관의 젠트리피케이션 담당자가 사견임을 전제로 뱉은 말이 의미심장하다. "건물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이슈화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등 우리 사회 의사결정권자 상당수가 건물주이기도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전향적 대책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고 봅니다."
배두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