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을 '핫플'로 만든 청년 사업가들이 부동산 거래를 했다
2020년 2월 중순 진행된 익선동 한옥마을 내부 한 건물의 실제 철거 모습이다. 철거된 한옥의 주인은 "이 자리에 새롭게 카페가 들어설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픽 디자인 여동건]
'핫플(Hot Place)' 익선동은 기존 한옥을 개조한 독특한 분위기에 카페·음식점이 터를 잡으면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다닥다닥 붙은 100여곳 남짓한 좁은 한옥마을을 크게 뒤바꾼 이들은 30~40대 젊은 창업가들이다. 그런데 이 한옥마을 브랜드를 만드는 데 한몫한 젊은 사업가들이, 이곳에서 부동산 매매 역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낙후된 동네를 고급 브랜드로 만드는 동시에 부동산 매입을 통한 거래 역시 진행하고 있는 것. 이같은 사업 모델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도시 재생을 선도하는 도전 정신에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측이 있는 반면, "결국 부동산 개발사업을 '도시재생'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선동 한옥마을 땅을 산 네오밸류 대표와 밀도 지배인
헤럴드경제가 익선동 토지 등기부등본 소유주(단독·다가구 기준 익선동·낙원동 100곳)를 분석한 결과, 익선동의 유명 빵집 '밀도'의 지배인(전익범 셰프)과 이 '밀도'를 소유한 '네오밸류'의 손지호 대표는, 최근 익선동 땅을 매입해 투자를 진행 중인것으로 확인됐다.
'밀도'는 일본에서 제빵사로 일했던 전익범 셰프가 서울 성수동에 만든 식빵 전문 베이커리다. 줄을 서서 식빵을 사는 맛집으로 유명했던 이 곳을, 네오밸류(부동산 개발회사)를 운영하던 손지호 대표는 지난 2015년 투자(네오밸류와 손대표 각각 50% 지분 인수)했다. 손 대표와 네오밸류가 '밀도'의 지분을 소유하면서 이 밀도는 '어반라이프'라는 회사명으로 있다가 지난 4일 다시 '어반라이프'에서 분할한 '더베이커스'라는 회사의 지점 소속으로 전환됐다.
'밀도'는 현재 익선동 한옥마을(낙원동 82-7)에서 영업을 진행중이다. 밀도 익선동 지점은 고급 베이커리 이미지를 바탕으로 젊은이들이 인스타그램 맛집으로도 꾸준히 오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밀도'의 지배인 전익범 셰프는 자신의 부인과 2019년 8월에 익선동 166-41번지를 매입했다. 현재 이 곳은 한옥마을 내부에서 '마라부트'라는 신발 매장에 임대를 놓은 상태다.
'밀도'의 지분을 보유한 '네오밸류'의 손지호 대표 역시 2018년 12월에 '디티개발유한회사'라는 법인을 통해 익선동 한옥마을 내부 166-36번지(땅과 건물)를 매입했다. 매입 당시 이곳은 '미담헌'이라는 한정식 집이 운영되다 현재는 주차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익범 셰프와 손지호 대표의 매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밀도'가 익선동을 유명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이들이 부동산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낙후된 동네를 살리는 사업이 동시에 부동산 가치를 끌어올려 차익 실현의 기회까지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베팅액도 크다. 밀도 전익범 셰프는 익선동 166-41번지를 2019년에 8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3년 전인 2016년 거래가(4억1500만원)보다 2배 높은 가격에 산 것이다. 손지호 대표는 디티개발유한회사를 통해 166-36번지를 43억3000만원에 거래했다. 이곳의 2009년 실거래가(12억원)와 비교하면 10년전보다 3.6배 높은 가격이다.
전익범 셰프는 "딱히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매입한 것은 아니고, 재테크 투자상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네오밸류 디티개발유한회사에 대해 "전시공간 등이 들어서는 게 가능할 수 있다고 보며, 아직 향후 어떤 사업을 할지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밀도(과거 어반라이프 기준) 2018년 영업손실 41억원, 당기순손실 45억원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자본은 -61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처해 있다. '밀도' 사업의 수익성이 높지 않은 상태다.
도시재생 사업체 '익선다다'의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두 명의 공동대표는 한옥마을 랜드마크였던 '낙원장'을 설립한 인물들이다(그림 왼쪽). '네오밸류' 대주주인 손모 대표는 '더베이커스(밀도)'와 '디티개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그림 오른쪽). [디자이너 여동건]
한옥 보존을 내걸고 투자자로 들어왔던 '익선다다'
'익선다다'는 도시공간기획자 '박한아 대표'와 아트디렉터 '박지현 대표'가 2014년 설립한 회사이다. 익선동이 북촌이나 서촌과 달리 상가구역으로 지정된데다, 2014년엔 10년간 끌어온 재개발 계획까지 무산되자 박한아·박지현 대표는 이 동네의 변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익선다다'는 '도시재생'과 '지속가능한 거리를 만들기'를 내세우며 익선동 상권을 개발시켰다.
갤러리 겸 카페 '익동다방'을 시작으로 레스토랑 '열두달', '경양식 1920' 등 한옥의 개성을 살린 공간을 운영했다. 이들의 컨설팅을 받아 운영되는 곳도 10여개에 달한다.
'익선다다'의 박한아·박지현 대표는 랜드마크 호텔이었던 ‘낙원장’ 역시 만들었다.익선다다가 기존의 허름했던 '그린필드 모텔'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낙원장' 사업을 통해서 두 대표는 부동산 차익을 크게 냈다. 두 대표는 이 호텔 사업을 하기 위해 '주식회사 낙원장'이라는 회사를 따로 설립했다. '주식회사 낙원장'은 2016년에 익선동 170번지(토지와 낙원장 건물)를 29억7880만원에 매입해, 2018년에 42억원에 되팔았다. 매매가격만 단순히 따지면, 2년만에 13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실현한 것이다. 당시 낙원장으로의 개조사업을 하면서 익선다다는 크라우드펀딩 역시 진행했다.
밀도의 전익범 셰프가 사들인 166-41번지는 원래 익선다다의 본점이 있던 곳이다. 익선다다는 이곳역시 2018년에 4억1500만원에 사들인 뒤 2억7000만원 비싼 6억8500만원에 매각했다. 현재 익선다다 대표들은 대전 철도 관사촌을 중심으로 조용히 '도시재생 사업'을 해나간다며 '소제호'라는 회사를 설입해 이주한 상태다.
익선다다 측은 낙원장에 대한 크라우드펀딩 수익 현황(투자금액과 수익률, 투자자 배분상태)등과 익선다다 본점 매각에 대한 헤럴드경제의 질의에 "대외비적 요소가 있어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익선동 한옥마을 일대 2012년, 2016년, 2020년 모습 [네이버 지도와 다음 카카오맵 활용][그래픽 디자인 여동건]
"동네 상권을 살린다" vs. "부동산 차익 실현자일 뿐"
밀도로 유명한 '네오밸류'와 '익선다다'의 회사 설명을 보면, '부동산 관련 사업'이 중요하게 명시돼 있다. 네오밸류는 '금융서비스업·경영컨설팅업·부동산 매매 공급 및 임대업'이 순서대로 언급돼 있고 , 익선다다 역시 '부동산 임대업'을 사업 목적 첫 부분에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외부에선 이들의 사업이 궁극적으로 부동산업이라는 평가를 내놓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핫플'이 되면서 임대료가 오르면 부동산 매매 가치가 높아진다고 평가한다. 익선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익선동 한옥마을은 "주택에서 음식점(2종근린시설)로 용도변경이 되면서 월세로 한평에 5만원 하던 곳이 50만원으로 뛰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소들에 따르면 최근 익선동 한옥마을 내부 월 임대료는 평당 30만~50만원 수준이다. 익선동이 속한 행정동인 종로 1,2,3,4가동의 1평당 평균 임대시세(2019년 3분기 기준) 약 28만원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소 대표는 "익선동 한옥마을의 내부로 갈수록 임대료가 급속하게 오르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내부 부동산 매매가격까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네오밸류나 익선다다의 사업 모델을 두고 갑론을박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하는 서정렬 영산대학교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이런 사업 모델에 대해서 비판적"이란 입장을 취했다. 서 교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해 죽어가는 상권을 살린 것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결국 이러한 상권 활성화 이면에 숨은 부동산 차익실현을 비지니스 측면에서 마냥 긍정할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을 매입한 뒤 이를 유지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매각을 했다면,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선동에서 3년 가량 사업을 한 최덕균 익선동 상인연합회 회장은 "익선다다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익선동 한옥마을 일대 2012년, 2016년, 2020년 모습 [네이버 지도와 다음 카카오맵 활용][그래픽 디자인 여동건]
지금 익선동은 '위법 건축물 거리'
무리한 상권 활성화가 진행되면서 '위법 건축물' 딱지가 붙는 곳 역시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옥마을 일대 건축물대장을 떼 보면, 이곳에서 '일반음식점(2종근린시설)'으로 기록된 건축물 54곳 중 36곳이 '위반건축물'로 표시돼 있다. 한옥마을 상점 10곳 중 6~7곳은 위법한 건축이란 뜻이다. 주택에서 일반음식점으로 건축물 용도를 변경한 뒤, 젊은이들에게 인기있을 독특한 인테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 증축을 다수 진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반건축물로 등재되면, 건물 소유주는 위반에 따른 '이행강제금'을 건물을 임차해 사업하는 상점 주인들에게 임대료 형식으로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익선동 한 임차인은 "1000만원이 좀 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돼도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부담하는 임대료를 높이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며 "이행강제금 부과에도 아직까지 건축물 위법성이 지속되는 이유는, 이행강제금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상점주인들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행강제금이 설령 임차인의 임대료를 끌어올려도 상권 활성화 매력이 이를 뛰어넘는다는 설명이다.
헤럴드경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서울시 전체 이행강제금(전체 자치구 424개 행정동 기준)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16억3400만원 수준이던 종로 1·2·3·4가동(익선동·인사동 등을 포함한 행정동)의 이행강제금은 2019년에 19억4971만원이다. 행정동별 기준으로 볼때, 서울시내에서 가장 많은 이행강제금이 걷히고 있다.
김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