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투척, 한민족의 자존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이봉창 의사의 의거 79주년 기념식이 8일 오전 11시에 백범기념관에서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문국진)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 김신 백범기념관장, 윤경빈ㆍ김국주 전 광복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식사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ㆍ광복회장(부회장 대독) 기념사, 헌화 순으로 진행된다.
이봉창 의사는 1901년 서울에서 출생, 1931년 1월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상해임시정부를 찾아갔으며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거쳐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7일 김구 단장의 전송을 받으며 일본인으로 위장해 도쿄로 출발했다.
12월 말 도쿄에 도착한 이봉창 의사는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 8일 동경 대대목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1932년 1월 8일 앵전문(櫻田門)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행렬이 나타나자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으나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돼 같은 해 9월 30일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시곡(市谷)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그 대상이 일본 제국주의가 신격화 해 놓은 일왕이었고, 거사 장소가 적의 심장부인 도쿄였다는 점에서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으나 그 의미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의거는 일제 강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신념과 의지를 일깨워 침체상태에 빠져있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전선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했으며, 같은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虹口)공원 의거의 기폭제가 됐다.
1946년 김구선생은 일본에 있던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1946년 6월 30일 국내로 봉환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했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김대우 기자@dewki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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