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파 침묵하며 체제의 결속 도모
우발적 군사충돌 유발 배제 못해
합동참모본부가 지난15일 북한이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모습이 담긴 우리 측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사진은 북한이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는 모습 [합참 제공] |
정체불명의 무인기 평양 상공 침투 및 전단 살포를 고리로 원색적인 대남 비난 ‘말폭탄’을 쏟아내던 북한이 급기야 경의선과 동해선 북측 연결도로를 폭파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이미 전방 부대에 완전사격 준비태세에 돌입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집한 한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격인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에서 향후 대응군사행동계획을 논의하고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세워 추가 도발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북한 관영매체는 16일 남북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 폭파 소식을 전하지 않았지만 평양 무인기 사건을 빌미로 대남 적개심 고취와 내부결속 강화를 도모하는 모습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게재한 기사에서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전단을 살포한 한국에 복수하겠다며 자원입대를 탄원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신성한 우리 공화국의 주권과 안전을 침범한 한국 쓰레기들을 징벌하려는 멸적의 의지가 온 나라에 차 넘치고 있다”며 “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만도 전국적으로 140여만명에 달하는 청년동맹일꾼들과 청년학생들이 인민군대 입대, 복대를 열렬히 탄원했다”고 전했다. 이어 청년들이 “분별없이 날뛰는 미치광이들에게 진짜 전쟁 맛, 불벼락 맛을 보여줄 결의”를 피력했다고 덧붙였다.
남북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외부 위협을 부각하면서 청년들의 입대 탄원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내부결속 수법이다.
다만 북한은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과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매체를 통해 남북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 폭파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시 조선중앙통신이 당일 보도하고 노동신문이 이튿날 보도한 것과 온도차가 나는 대목이다. 다만 전날 폭파 현장에 촬영장비를 든 북한군의 모습이 목격됐다는 점에서 추후 공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북한의 최근 행보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때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북한은 2020년 6월에도 대북전단을 빌미로 김여정 당 부부장의 담화를 쏟아내다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통해 ‘군사적 대적 행동’을 주장하고 김 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예고한 지 사흘만에 폭파에 나섰다.
북한의 남북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 폭파는 김 위원장이 연초부터 지시한 남북관계 단절 방침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핵이라는 ‘절대무기’를 가졌지만 남한이라는 존재에 대한 상당히 큰 부담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센터장은 “한국 문화가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로 퍼지는 상황에서 북한만 예외일 수 없다”며 “북한 사람들이 과거와 달리 DVD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한의 방송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남한에 대한 호감이 생기니 정권 유지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북한이 향후 7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미는 북한이 3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과 정권 교체를 전후해 핵실험을 도발할 수 있다고 보고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전날 북한의 남북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 폭파에 대응해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MDL) 이남 지역으로 K4 고속유탄 기관총과 K6 중기관총 등 중화기로 경고사격을 한 장면이 보여주듯 남북 군사적 충돌 비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 센터장은 “남한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로 남북 간 총격전 등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북한이 24시간 초비상 경계 태세를 걸어놓은 상태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포착하고 대공화기 사격을 하면 탄이 MDL을 넘어올 수 있는데 우리 군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만큼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신대원·오상현 기자